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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영원] 계속 매달릴 거에요. 그러니까 나 밀어내지 마요.


2* 영원 '계속 매달릴 거에요. 그러니까 나 밀어내지 마요.'


아저씨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날 빤히 쳐다봤다. 그래도 좋다는 듯 내가 계속 방실방실 웃으며 쳐다보자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찰나의 웃음이 좋아 나는 계속 방실방실 웃으며 아저씨 주변을 맴도는 거였다. 물론 웃지 않는 그 정색의 아저씨도 너무 좋지만.

"얼른 가. 고딩이.. 가서 공부나 해, 인마."

"난 아저씨한테 반했고. 아저씨가 좋고. 계속 보고 싶은데 아저씨는 나 만나러 안 오니까 내가 쫓아다니는 거죠."

"아, 진짜 발랑 까져가지고···. 때릴 데도 없고 진짜 이거. 아, 진짜 빨리가라. 위험하다, 아가야."

"어! 지금 아가라고 했어요? 그거 되게 설레요. 다시 해주면 안돼요?"

가라는 소리는 안 들린다는 듯 내가 아가아가 노래를 부르자 아저씨가 쭉 내 머리를 민다. 나보다 약간 키가 작아 손을 위로 들어 미는데 멋있으면서 귀엽다. 활짝 웃으면 더 귀여울 거 같은데. 밀리면서 입술을 쭉 내밀며 뾰루통해지자 아저씨가 다 밀어놓고 슬그머니 나를 다시 쳐다봤다. 자기 머리를 막 흩뜨리더니 다시 내쪽으로 다가왔다.

"진짜 오늘은 위험해서 그래. 집에 가."

"위험한 일 할거에요, 아저씨?"

"깡패가 그러면 위험한 일 하지. 합법적인 일 하겠냐. 그니까 오지말라고. 나 좋아하지도 말고."

"...그래도 내일 또 올거에요. 아저씨 다쳤나 안 다쳤나 검사할거니까 다치지 마요."

울망졸망 쳐다보며 말하자 저 쪽 쇼파에 앉아있던 다른 아저씨가 오오, 중간보스, 걱정해주는 사람도 다 있네, 장난을 쳐온다. 아저씨가 그런 남자를 쳐다보며 주먹을 들어올리고 남자는 곧 조용해졌다. 고개를 돌리고 한참 내쪽을 쳐다보지 않는 아저씨에 옷 끝을 잡아당기며 다시 물었다.

"응? 아저씨, 다치지 마요."

"아, 진짜. 알았어. 알았으니까 제발 좀 빨리 가라."

귀찮은 듯 말하는 아저씨에 시무룩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불굴의 전원우, 안 다친다는 약속을 받았기에 괜히 좋다고 웃는다. 가방을 챙겨 일어나자 아저씨가 자연스레 밖까지 따라왔다. 밖이 약간 어두워졌기 때문에 아저씨가 또 짜증을 낸다. 진짜 아까 가랄 때 갔으면 밝을 때 갔을 거 아냐, 옆에서 투덜댄다. 그 소리가 왠지 나를 걱정해주는 소리로 들려 또 심장이 막 뛴다. 아저씨는 왜 모든 말과 행동으로 날 설레게 하는 거야. 더운 날씨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며 살짝 빨개진 얼굴을 부채질로 식혀본다. 그런 나를 보더니 아저씨가 잠시만 기다려봐, 하더니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가만히 서서 아저씨를 기다리니 금방 뛰어나온 아저씨가 숨을 몰아쉬며 팩같은 걸 하나 건네준다.

"아이스 팩이라고, 더위 많이 타는 애가 사무실에 있어서 갖다 놨는데 너 이거 하면서 가라."

건네주며 닿은 손을 확 잡고 싶었지만 이렇게 아이스팩도 갖다 주고 걱정도 해주셨으니까 그만 들이대야지. 아이스팩을 얼굴에 대며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아저씨도 설렁 설렁 손을 흔들며 가라,고 인사를 해준다. 아저씨를 보며 뒷걸음으로 멀어지자 아저씨가 화를 낸다. 똑바로 걸어, 전원우! 오늘은 걱정 두 번이나 들었네.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뒤돌아 뛰어갔다. 내 뒷모습을 계속 볼 아저씨를 생각하면 왠지 기분이 이상하다. 뒷모습같은 건 보여주고 싶지도 않고.

아저씨는 음, 조폭이다. 나쁜 짓을 하고 다닌다는. 내 눈으로 나쁜 일하는 건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아저씨 사무실에 있는 남자들이 다 아저씨를 약간씩 무서워하는 걸 보면 조폭 중에서도 꽤 자리 있는 조폭인 듯했다. 나는 조폭, 양아치, 일진 같은 류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아저씨는 다르다. 아저씨라서 다른 건지, 내가 반하게 된 사람이라 다른 건지. 사실 다른 어떤 조폭들과 똑같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다.

아저씨를 처음 본 날, 아저씨는 언덕길에서 한 할머니의 고물 수레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다. 입은 티의 등 부분이 땀으로 젖었는데도 할머니를 보며 자상하게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며 힘을 주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냥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는데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폭 남자들이 몰려오더니 아저씨를 둘러쌌다. 어, 위험한 거 아니야, 생각하고 있을 때 쯤 남자들이 양쪽으로 갈라섰고 아저씨가 서서히 빠져나오니 조폭들이 허리 숙여 인사하곤 뿔뿔히 흩어졌다. 뭐야, 조폭이야? 인상을 쓰며 쳐다보자 계단 부근에 앉아 하드를 먹고 있던 나를 발견한 아저씨가 씩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그 웃음이 문제였다. 그 웃음이. 대체 왜 가만히 앉아있던 나한테 웃어줘서 안 그래도 할머니 수레를 밀어주던 때부터 약간 설레던 나를 완전 반하게 만드냐고. 지금와서 나를 밀어내는 아저씨에게 따지고 싶다. 그 때 왜 웃어서 아저씨 말대로 평범한 고딩이었던 나를 조폭을 좋아하는 게이로 만들었냐고. 사실 아저씨 잘못은 하나도 없지만···.


_

오늘은 주말이었기에 일찍부터 아저씨 사무실에 나갔다. 읽을만한 책과 문제집 몇 권을 가방에 넣은 채. 아버지께서도 며칠 안되는 휴일이라 집에 계셨기 때문에 도서관 간다는 거짓말로 대충 둘러대고.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빵집에 들러 빵을 몇 개 주워담았다. 계산하고 나오는 길에 보인 작은 예쁜 사탕도. 아저씨는 밥은 잘 챙겨먹는 것 같긴 한데 보면 그닥 음식에 대한 욕심을 크게 없는 것 같았다. 맨날 다른 아저씨들이 걸신 들린 것처럼 먹으면 옆에서 많이 먹으라며 앞에 가져다주고 있고. 그게 속상했었나. 아저씨를 만나러 갈 때 먹을 것을 사가는 게 습관이 됐다. 물론 사간 걸 받으면 아저씨는 고딩이 돈이 어딨냐며 앞으로 사오지 말라고 화를 내긴 하지만. 다른 아저씨들이 못 먹게 철벽 방어를 하며 아저씨 입에 갖다대면 아저씨는 못 이긴 척 그걸 받아 먹곤 했다. 어쩌면 그게 좋아서 계속 사가는 걸 수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길게 누워 쪽잠을 자고 있는 아저씨가 보인다. 다른 아저씨들은 어디갔는지 사무실에 아저씨뿐이라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가 아저씨 앞의 테이블에 앉아 자는 아저씨를 쳐다봤다. 까만 머리랑 올라간 눈매랑 오똑하게 솟은 코랑 예쁜 입술까지. 어디 하나 안 멋있는 데가 없다, 정말. 숨소리도 조용하게 내면서 자네. 팔짱끼고 자면 안 불편한가, 근데 되게 멋있다. 새삼 진짜 멋있어.

경계심을 푼 듯 가만 누워 자고 있는 아저씨를 보니 괜히 이상한 마음이 든다. 나도 남잔데 이렇게 무방비하게 있으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자 고개를 휙휙 돌려 주위를 확인하고 다시 위에서 아저씨를 빤히 쳐다봤다. 자는 거 맞겠지..? 눈위에서 슥슥 손을 흔들고 그 앞에 쭈그려앉았다. 이거 죄 짓는 느낌이야, 아니야, 진짜 죄인가. 추행인가, 이거. 안 잡혀가겠지? 아니, 근데 나는 아저씨를 좋아하는데 아저씨가 너무 멋있으니까. 한참 고민하다 볼에 쪽 뽀뽀했다. 볼 뽀뽀정도는 괜찮겠지? 그동안 쫓아다니면서 좋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내 볼이 빨개진다. 근데 아저씨 향기 되게 좋다. 나도 모르게 더 다가가게 된다. 가까운 데서 바라본 아저씨는 더 더 훨씬 더 멋있어서 자꾸 바라보게 된다. 조금만 더. 속으로 생각하며 입가에 가볍게 뽀뽀했다. 촉,하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려서 급하게 허리를 들었다.

괜히 부채질을 하며 문가를 쳐다보자 아저씨 부하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점심을 사러갔던 듯 양 손 무겁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들을 들고 온다. 원우 왔네? 먹을 복 있네.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는 아저씨들이 테이블에 쫙 음식을 세팅하기 시작하고 아저씨는 잠에서 깬 듯 조용히 일어나 앉는다. 그런 아저씨 바로 옆에 앉지 않고 좀 떨어져 앉으니 다른 아저씨들이 오, 전원우 왠일이야, 중간보스 옆에 안 앉고? 물어온다. 나는 아무 말 않고 음식들 포장을 벗겨내고 아저씨는 아, 니들 왜 이렇게 시끄럽냐, 며 퉁을 준다. 포장을 벗기며 고개를 내린 내 얼굴이 화끈화끈하다. 내가 자는 사람에게 무슨 짓을-


밥을 다 먹고 내가 사온 빵까지 다 먹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다 끝나간다. 딱히 주말이랄 게 없고 일이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뉘다보니 쉬는 날이 일정하지 않다. 거기다 요즘 사업을 확장해 바쁜 시기라며 더더욱 쉬는 날이 없다. 아저씨네 조직은 되게 별로네요, 쉬는 날도 없고. 내뱉는 말에 아저씨가 머리에 콩 딱밤을 아프지 않게 놓는다.

"좋으면 들어오려고?"

"쉬는 날 많으면 들어갈 수도 있죠."

"아서라. 대학가서 공부하고 좋은 데 취직해야지."

"여기도 회사는 좋잖아요."

"씁, 자꾸 토단다."

"아, 맞다. 아저씨 안 다쳤죠? 얼른 봐봐요."

옷을 들출 듯 움직이자 아저씨가 식겁하며 내 손을 떼어낸다. 얼른요, 칭얼대자 아저씨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곤 안 다쳤어, 대답했다. 그 대답에도 옷을 들추려는 듯 다가가자 아저씨가 내 두 손을 잡아 한 손으로 묶어놓곤 내 눈을 쳐다보고 말한다.

"애가 무서운 줄 모르고 남 옷을 들추려고 해. 어디가서 그러지 마."

"...아저씨니까 그러는 거죠. 걱정돼서···."

"알아. 걱정하는 거. 진짜 안 다쳤으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어요."

아저씨 눈을 바로 쳐다보며 대답하자 아저씨가 그래, 하며 미소지어준다. 그 미소에 얼이 빠져 가만히 아저씨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아저씨가 쑥 일어나더니 책상에 가서 앉는다. 이제 일할 건가봐. 나도 가방에서 책을 꺼내 열심히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시끄럽던 아저씨들이 다 조용해지고 가끔 들려오는 전화 대화 소리빼고는 말 소리 하나 없다. 저렇게 사무 일도 하고 몸 쓰는 일도 하고. 우리 아저씨 돈 많이 받아야겠다, 정말.

한참을 문제를 풀다 약간 소란스러워진 주위에 고개를 드니 아저씨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그 쪽으로 다가가니 당황한 듯 나를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 뭔데, 무슨 일인데. 고개를 빼끔 내밀고 쳐다보자 웬 여자가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한 여자가 내가 봐도 참 예뻐서 빤히 쳐다보자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여자가 싱긋 웃더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군데 여깄니?"

누구냐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어 가만 서있었다. 그냥 고딩인데요, 이건 너무 없어보이는 것 같은데. 잠시 그러고 있자 어디 갔다왔는지 그제야 들어온 아저씨가 힐끔 보더니 그냥 나 아는 동생, 대충 말한다. 그에 괜히 서운해져서 아저씨를 쳐다보는데 여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아저씨 쪽으로 걸어간다.

"왜 이제 왔어. 기다렸잖아."

"누가 오래?"

"자기 진짜 차가운 거 하난 여전하다. 이젠 상처도 안 받아. 됐고, 아버지가 언제 한 번 같이 식사나 하자셔."

"보스가? 너랑 같이?"

"응."

뭐야, 이거. 대화만 들으면 저 여자는 보스 딸이고 아저씨는 보스가 점찍어둔 사윗감, 뭐 이런 건가. 되게 진부한 아침드라마같다.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만 빼면. 사실 뺄 필요도 없이 작은 엑스트라겠지만. 아저씨는 날 신경도 쓰지 않으니 이대로 내가 사무실을 찾지 않으면 저 아침 드라마는 별 장애물 없이 결혼이라는 엔딩에 골인하겠지. 우울한 생각을 하니 더 우울해진다. 다시 자리에 가 앉으며 문제집을 쳐다봤다. 저 대화 듣기 싫어.

"됐다. 보스만 부르시면 가는데 너가 왜 끼냐. 너 끼면 안 간다고 보스께 전해."

"아, 진짜 엄청 깐깐하게 구네. 보스가 명령하면 따르던가 해야 할 거 아니야."

"싫으면 자르던가."

"참나. 되게 건방지게 구네, 진짜."

"그것도 싫으면 자르던가."

"아 치사해서 안 먹어. 됐다 그래. 권이사는 됐으니까 한팀장 오라 그래."

"한 팀장? 또 걔한테 빠졌냐. 그만 좀 해라. 그러다 조직 간부들 다 너랑 한 번씩 사귀겠어."

"어머, 나 반반한 애들 있으면 한 번 씩 다 자보는 게 소원인 여자야. 저 고딩도 되게 내 스타일인데 양심상 고딩이라 참는거다."

"미친. 너 빨리 나가라. 지금 뭔 소릴 하는 거야."

..아침 드라마가 아니라 새벽에 케이블에서 하는 야한 드라마, 뭐 그런 거였나. 대화의 방향이 급격히 이상한 곳으로 흐르고 귓가가 빨개진 아저씨가 여자를 막 밀어내며 사무실 바깥으로 내보낸다. 밖에서 또 한참 대화가 흐르고 그 대화까진 들리지 않아 그냥 앉아서 가만히 책에 시선을 둔 채 멍때리고 있다. 사무실로 들어온 아저씨가 슬쩍 나를 보며 다가온다.

"쟤 말 신경 쓰지마."

"무슨 말이요?"

"다."

"제가 타입이라 저랑 자고 싶다는 거요?"

"시발. 저거 진짜, 한 대 치고 와야겠다. 기다려라."

낮게 중얼거리는 아저씨를 잡으며 슬쩍 웃었다.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뭐가 좋다고 웃어, 하며 내 얼굴을 쓸어내린다. 아저씨. 웃음을 멈추고 부르는데 아저씨가 잠시만, 하더니 차 키랑 지갑을 들고 전원우 따라와, 한다. 졸졸 따라가서 아저씨 옆에 서는데 아저씨가 사무실을 둘러보더니 사무실 사람들에게 쭉 말한다.

"야, 다 퇴근해."

"지금요?"

"어. 나 퇴근할거니까. 근데 하던 일은 마저 하고 퇴근해라."

"아, 뭐에요. 혼자 퇴근할 거라는 말 왜 이렇게 돌려말해요."

"눈치는 있어서 다행이다. 그럼 나 간다."

원성이 자자한 사무실을 나오며 아저씨가 나를 돌아본다. 한참 쳐다보더니 또 그대로 앞서 걸어간다. 그 뒤를 따라가며 머리가 복잡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여자를 보고 나니 쓸데없이 귀찮은 나보고 오지 말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오늘따라 드는 우울한 생각들에 걸음이 처진다. 이대로 아저씨를 따라가면 모진 소리를 듣고 떼어내져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저씨의 차에 올라타 말 없이 창 밖을 쳐다본다. 한강이 흐르고 강가를 타고 매끄럽게 나아가는 차 안에는 적막이 가득하다.


"내가 진짜 고3 데리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전망이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어느새 약간 어둑해져 하나 둘 불이 켜진 서울을 바라본다. 아저씨가 약간의 한숨과 함께 말을 시작했다. 자조가 섞여있는 듯한 목소리에 심장이 철렁한다. 내내 쳐다보던 밖에서 시선을 떼고 아저씨를 쳐다봤다. 웃음기 하나 없이 건조한 얼굴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아까···"

"아저씨."

급하게 말을 끊자 아저씨가 응? 대답해온다. 그와중에도 다정해서 눈물이 난다. 아저씨가 나를 떼어내기 전에 어떻게든 잡아보려 횡설수설 말을 이어간다.

"아저씨. 아저씨가 저 귀찮아하시는 거 알아요. 고딩이고, 남자애고, 예쁘지도 않고 아저씨가 좋아할 구석 하나 없다는 것도 알아요. 근데, 근데 있잖아요. 저는 아저씨가 너무 좋아요. 그래서 그냥 아저씨 옆에 있기만 해도 좋아요. 계속 좋아할 거에요. 계속 매달릴 거에요. 그러니까 나 밀어내지 마요. 그만 좋아하라고 하지 마요. 네?"

울먹울먹하며 쏟아내는 말에 아저씨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앞이 흐려져서 아저씨 얼굴이 안 보인다. 눈을 깜빡여 눈물을 떨어뜨리고 다시 선명해진 눈으로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가 낮게 숨을 쉬고 손을 들어 눈 밑을 닦아준다. 물을 가져와 마시라며 건네준다. 물을 받아 마시며 계속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가 입술을 살짝 축이곤 내게 말을 건넨다.

"너는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렇게··· 그런 말을 해."

"..."

"그래, 너 고딩이고 남자애지. 예쁘지도 않다,는 건 솔직히 동의 못하겠다. 내 눈엔 너 예쁘니까."

"?? 아저씨."

"나 조폭이고 너보다 나이도 많고 솔직히 계속 너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해. 근데 너가 눈 앞에 있으면 그게 생각대로 안 돼. 너는 지금 나이에 호기심으로 약간의 충동으로 나 좋아한다고 따라다니는 걸 수도 있어. 그래서 내가 정리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니···"

"근데 그게 니 충동이고 호기심이더라도 너 잡고 싶어 자꾸. 아무것도 모르는 너 두고 얽매어놓고 아무데도 못 가게 하고 싶어, 나."

나도 아저씨를 좋아하고 아저씨도 나를 좋아하는 데 뭐가 이렇게 복잡해요. 말을 잇는 아저씨를 바라보다 그대로 뽀뽀했다. 아저씨가 손을 들어 내 뒷목을 감싸고 고개를 틀어 더 깊게 들어왔다. 혀로 내 입술을 두드렸고 나는 그에 입술을 열어 화답했다. 아저씨의 혀가 내 안으로 들어와 얽히는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정신이 없어 소매만 꼭 쥐고 있자 아저씨가 내 손을 잡아 올려 자기 어깨에 올린다. 아저씨 어깨를 꽉 쥐고 그대로 아저씨를 받아들였다. 첫 키스가, 내 첫 키스가 아저씨라 너무 기뻐요.

내가 느끼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아저씨의 입술이 떼어졌다. 여전히 내 뒷목은 아저씨의 손에 잡혀있고 아저씨의 어깨는 내가 쥐고 있다. 그대로 아저씨가 내 눈을 보며 말한다.

"좋아해, 전원우. 아주 많이."

길지 않은 내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감히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보다 행복할 순간은 없을거라고도.

 

 

+

"근데 아저씨 계속 밀어낼 거라더니 왜 갑자기 생각이 바꼈어요?"

"OO이가 너보고 누구냐고 묻는데 너가 얼어서 가만히 있었잖아. 그거 보는데 뭔가 그랬어.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생각났고. 이대로 너가 발길만 끊으면 너는 그대로 멀어지고 나는 거기서 그냥 너 기다리면서 있겠구나. 그니까 두려워지더라. 네가 없다는 생각 드니까."

"..OO이요? 이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요?"

"..."

"왜, 그 여자 분 예쁘던데. 혹시 전 여친이고 막 그런 건 아니죠.."

"아니야. 진짜 아니야. 걔는 진짜... 걔 말하는 거 못 들었어?"

"들었어요."

"아, 걔가 너보고 자기 스타일이랬지 참. 아 짜증나게. 너 왜 이렇게 예뻐서 사람들 다 홀리고 다녀."

"ㅎㅎ 아저씨 되게 방향 잘 바꾸시네요."

"아니, 근데 진짜 그 때 짜증났어. 보스 딸만 아니면..."

"근데 보스딸한테 그렇게 대해도 돼요?"

"어, 돼. 내가 다 이겨. 걱정하지 마."

"걱정 안 해요. 아 근데 아저씨 얼른 가서 자야 되는 거 아니에요? 아까 들으니까 내일 새벽에 무슨 일 있다고 그러시던데."

"아, 나 잠 별로 없어. 괜찮아."

"? 아까 소파에서 낮잠자서 그런가?"

"나 그 때 안 잤는데?"

"...?"

"...?"

"???"

"...!"

"그럼 아까 다 알면서 자는 척 한 거에요..?"

"아, 아니. 아 그때는 잤나? 잤었나? 잠깐 잠들었던 거 같기도 하고."

"뭐에요."

"괜찮아. 귀여웠어. 역시 애구나, 싶긴 하더라."

"아, 진짜. ㅠㅠ"

"ㅎㅎㅎㅎ 귀여워."

 

-

하며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고
왜 진도 더 안 나가냐며 키스에서 매번 멈추는 아저씨 부여잡고 펑펑 울어대는 원우 위에서
내가 아무리 고딩이랑 사겨도 일말의 양심은 있다,고 말하는 순영아저씨.

수능 끝남과 동시에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채점 시키고 맛있는 거 먹인 다음에 정성 들여서 잡아먹고
잡아먹힘에도 좋다고 예쁘게 웃는 원우랑 그런 원우보면서 자제 못하고 계속 들이대는 순영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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