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우는 그러니까 자존심이 상해죽겠다는 얼굴로 들어와놓고는 당 최고의원 옆에 앉아 다 닳고 닳은 사람마냥 웃음을 흘리며 술잔을 채워주곤했다. 손 하나 대지 못하게 할 것 같은 냉기 서린 얼굴로 가만히 앉아 의원들의 얘기들을 듣다가도 막상 손을 대면 해사하게 웃으며 제 몸을 갖다 바치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얼굴을 하며 욕구를 불태웠다는 거다. 그래놓고 이차는 나가지 않는다며 아쉬운 얼굴을 하며 제 옆의 남자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이 이가 저를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환상을 갖게 하기까지.
그 갭이 어쩌면 전원우를 청원각 에이스로 올려놓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한다만은.
정치가 요정 정치의 구태의연한 썩은 악습을 답습하며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동안 크게 세 개의 요정이 주도권을 잡으며 모든 고위층과 재벌들의 방문을 앗아갔다. 청원각은 그 중 하나였고 그 중 남자 기생이 있는 유일한 요정이었다.
남자 취향인 사람이 굳이 아니더라도 뒤 탈 없는 -임신할 가능성이 없는- 남자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거셌으니. 발빠르게 여러 타입의 남자 기생들을 잡아놓은 청원각은 그 중에서도 우위를 점할 밖에. 청원각이 우위를 점하고 자리를 잡는 동안 새로 들어온 남자들 중 하나, 그가 바로 전원우였다.
요정에 있는 사람치고 사연없는 사람없다고 전원우 또한 많은 소문을 달고 다녔다. 한 재벌가의 서얼쯤이라더라는 소문에서부터 창녀의 자식이라 배운 게 씹질밖에 없어 이 짓을 하러 들어왔다는 소문까지.
제 소문을 모르는 게 아닐텐데도 전원우는 그 희고 고운 얼굴로 무감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제 할일을 했다. 남자들은 보통 끝까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역시 이차는 가지 않았다.
그러나 전원우가 수 많은 그 여자,남자들 사이에서 돋보이며 올라선 이유는 얼굴과 몸매, 타고난 색기뿐 아니라 그가 지닌 머리 때문이었다. 요정이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은 대게 사회·정치·문화에 두루 넓은 지식을 지니고 있곤 했으나 전원우는 폭이 넓고 깊기까지 했다.
전원우를 으뜸으로 치게 된 계기로는 한 소문이 있다.
그 소문의 일시는 야당 선거참모와 대통령 홍보실장의 은밀한 만남이 이루어진 한 날이었는데 그 중요한 얘기를 하면서도 기생들을 불러들여 질펀하게 놀아났다고 한다. 전원우 또한 그 장소에 있었는데 사까시를 하면서도 제 위에서 오가던 얘기들을 경청하던 그가 나가는 길에 그 인간들에게 묘한 웃음과 함께 한 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그 한마디로 선거 정책을 편 야당은 총선 때 대박이 나 예상 석이었던 120석을 훌쩍 넘겨 선거 대승을 이끌었고. 그 이후 전원우를 찾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묘한 웃음과 묘한 손길을 던지며 안달나게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똑똑한 머리로 골칫거리도 곧잘 풀어주니 예뻐할 수 밖에.
전원우를 찾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전원우의 몸값은 올랐고 아무곳에나 나오는 위치는 아니게 됐다.
그런 전원우라도 여당 주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는 빠질 수가 없었던 듯. 그가 예의 그 둔감한 얼굴로 똑똑 노크를 하고 룸에 들어왔다. 웃음을 파는 사람치고 웃음이 적은 편인 그는 보통 무표정한 얼굴로 사람을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었다. 키가 크기 때문이기도 했고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을 올려다보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여전히 둔감한 표정을 하고는 테이블에 앉아 자신을 쳐다보는 당 인사들을 내려다보며 서있었다.
"원우 왔네. 얼굴 보기 힘들어, 요즘."
"찾아주시지 않으셔서 말이에요. 요즘 백당원에 가신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아이, 그게 소문이 그렇게 도나? 그래서, 서운했어?"
"그래도 이렇게 다시 찾아와주시니 다행이죠. 저를 잊으신 줄 알았어요."
"어떻게 원우를 잊어. 이리 와서 좀 앉지."
"의원님께서 최고의원 되셨다는 소문은 들은 지 한참인데 이제와서야 찾아주시니 서운하네요. 저는 그저 낮은 자리일 때 한 번 보고 마는 사람인거죠. 최고의원 되셨다고 저를 버리고 백당원에 가시는데 제가 어떻게 의원님 옆에 앉겠어요."
샐쭉한 웃음을 얼굴에 담고는 나긋한 목소리로 비꼬는 말에 정 의원의 얼굴이 붉어진다.
전원우의 목소리에는 남자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담겨있다. 그리고 성욕에 약한 이들은 금새 그런 전원우의 노예가 되고 마는 거고.
정의원이 얼마 안가 전원우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달래느라 진땀을 뺀다.
그 필사적인 변명을 들으며 전원우가 정의원 모르게 피식 비웃고는 나를 쳐다본다.
눈이 마주친다.
그는 묘한 눈빛을 한다. 세상이 제 발밑에 있다는 그 오만한 눈빛. 동시에 모든 것에 상처받아 약해진 아이의 눈빛. 공존하는 그 눈을 한참 보다 내가 먼저 그 눈을 피했다.
*
손을 씻어내고 가볍게 털며 화장실을 나섰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는데 꺾어진 복도에서 전원우가 튀어나온다. 부딪히기 전 전원우의 팔뚝을 잡아 그대로 멈춰세웠다. 전원우가 팔을 털어내며 내 손을 떼어내고 동시에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붙잡아 복도 벽에 몰아세운다. 쾅,하며 전원우가 벽에 등을 부딪히고 그 충격에 그가 미간을 찌푸린다.
"뭐하시는 거에요."
"전원우."
"이거 놔."
"원우야."
"이거 놓으라니까."
"···우리 잘까?"
"미친 새끼. 이거나 놓으라고."
"정 의원한테 안겨있고 싶어? 어? 그 새끼가 슬금슬금 허벅지나 만져대는데도 가만히 안겨서 웃음이나 흘리고 싶어?"
"김의원께서 신경쓸 일 아니니까 이거 놓으시라고요."
전원우가 신경질적인 얼굴로 내 손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타고나길 근력이 약한 그는 조금만 세게 힘을 줘서 잡아도 금새 아파하며 꼬리를 내리곤 했다. 표정을 굳히며 손에 더 힘을 주어 그의 팔을 잡자 그가 낮은 숨소리를 내며 눈물 맺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왜 이래. 이제까지 신경도 안쓰고 지내더니 갑자기 왜. 내가 정의원한테 허벅지를 대주든 윤의원한테 입을 내주든 K그룹 이사한테 뒤를 내주든 니가 뭔 상관이야. 이거 놓고 룸이나 들어가. 네 취향 언니들 들어갈거니까."
"이제까지는 웃음파는 일하면서도 진짜로 웃음을 판 적은 없었으니까. 듣자하니 너 다음주부터 이차나간다며. 시발. S 그룹 총수라며. 걔가 얼마 준대? 어? 얼마 준대?"
"얼마면 뭐. 니가 주게?"
"시발, 진짜. 너 진짜···"
"어차피 버린 몸이고 어차피 밑바닥 인생이야. 이차 나간다고 뭐 또 얼마나 달라지겠어. 그냥 밑에서 흔들리면서 신음이나 내면 그뿐이야. 아니 오히려 잘됐지. 남자 맛 안 몸인데 박히면서 돈도 벌고."
"야, 전원···"
"그러니까 더 이상 아는 척 하지마. 청원각도 이제 오지마. 정의원처럼 백당원이든 다른 데든 다른 요정 가."
독하게 내뱉는 입술을 무작정 막고 봤다. 부딪히며 터진건지 쇠맛이 났고 고개를 격렬하게 저어대며 거부하는 전원우에 얼마가진 못했지만.
입술만 떼어진 거리에서 뚫어지게 쳐다보자 전원우가 곧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터진 입술을 이로 깨물며 소리를 참고 핏발 선 눈에서 눈물만 처연하게 뚝뚝 떨어졌다. 붉어진 눈을 하고 전원우가 나를 노려본다. 엉망인 얼굴을 하고서. 헝클어진 머리에 피 맺힌 입술을 하고 노려보는 눈을 한 전원우가 약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민규야, 나 진짜 아파."
"······"
"손목 좀 놔줘. 응? 진짜 아파."
격렬한 거부에도, 독한 눈빛에도, 날카로운 혀끝에도 약해지지 않던 마음이 내 이름을 부르며 하는 말에 금새 약해졌다. 때문에 같이 힘이 풀린 손에서 전원우의 손목도 빠져나왔다.
그가 손으로 손목을 감싸며 몇 번 돌려 제 몸을 확인하더니 곧 이어 그 손으로 내 얼굴을 거세게 내리쳤다. 돌아간 얼굴을 다시 전원우쪽으로 향하게 하니 그가 웃으며 이내 말을 이어갔다.
"아직도 내가 네 이름 부르면서 사랑한다, 할 거 같아? 어? 내가 그 전원우같아? 그래보여?"
"원우야."
"닥쳐. 내 이름 부르지 마. 착각이나 깨고 네 잘난 당 사람들 다 데리고 꺼져. 곧 죽어도 너랑은 안 자. S그룹 총수? K그룹? 신청당? 민한당? 다 자도 너랑은 안 자."
"원우야···"
"민규야. 어? 씨발, 내 말 안 들려? 꺼지라구. 꺼져. 네 얼굴 꼴보기도 싫으니까 이제 그 같잖은 미안한 표정 짓지 말고 꺼지라고. 어디서 동정질이야. 꼴같잖게.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대로 돌아서서 웨이팅 룸으로 들어간다. 전원우 돌아서서 걷는 모습이 꽤 위태롭게 휘청댄다. 금방이라도 손이 나갈 듯 움찔댔지만.
안다. 잡아줄 수 없다는 것. 잡아서도 안 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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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물... 잘 짜여진 정치물 원른 꼭 보고싶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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