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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원른전력 * HIGHLIGHT

*원른전력* HIGHLIGHT









 골목에 온통 쓰레기가 가득이다. 담배꽁초와 컵라면 용기는 기본이었고 어디에 썼을지 알 수 없는 주사기에 작은 비닐 팩들까지 굴러다녔다. 대충 발로 휘휘 치우고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음식물 썩어가는 냄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시큼한 냄새가 숨을 참아도 코로 기어들어왔다. 고작 한 발자국 들어섰을 뿐인데 골목 안은 벌써 저녁이고 밤이었다. 가로등 하나 없었고 높은 담들에 둘러싸여있어 해도 잘 들지 않았다. 이런 곳을 시궁창이라고 하지. 골목 저 쪽 안은 마약에 몸과 정신을 몽땅 망가뜨린 인생 막장들이 모여 오늘 내일 하는 곳이다. 아까 골목 어귀의 쓰레기들과 마찬가지. 나라에서는 아마 안 쪽 쓰레기들을 더 끔찍해할 것이다. 내 생각에는 여기 있는 쓰레기들이나 내게 돈과 임무를 주는 그 고위층들이나 또이또이한 쓰레기들이었지만. 어쨋든 그들은 돈이 있으니, 확실히 이들보다는 낫다. 그리고 난 그 쓰레기들한테 돈을 받고 쓰레기짓이나 하러 다니는 똑같은 쓰레기고.



 철이 다 벗겨진 대문을 밀자 문끼리 아귀가 안 맞아 생기는 시끄러운 철 소리가 끼이익 울려퍼졌다. 안 쪽에서 황급히 몸을 옮기는 인기척이 났다. 그대로 박차고 들어가 뒷문으로 도망가려던 놈을 잡았다. 뭘 하던 중이었는지 알만한 알몸 차림이었다. 새끼, 발기도 아직 채 안 풀렸다. 급하긴 했나보네. 복상사로 죽었으면 차라리 덜 억울했을걸. 놈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박고 그대로 당겼다. 소음기를 장착한 총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억, 소리도 못 내고 저 세상으로 떠난 놈의 얼굴을 구둣발로 한 번 걷어찼다. 피가 여기저기 튀어 엉망이었지만 여기까지 경찰이 올 일도 아니고 편한 마음으로 그냥 문턱에 주저앉아 가만 있었다. 방 안에서 인기척이 더 들렸다. 저 놈을 받아주던 창녀였을 것이다. 담배가 말렸다. 딱 한대만이라도 피면 좋을텐데. 담배 생각을 뒤로 하고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발, 이게 뭐야. 한 남자가 온 몸이 묶여 바닥에 내팽겨쳐있었다. 벌거벗은 채였다. 울다울다 멈춘 건지 눈가가 새빨갛게 짓물러있었다. 재갈을 물려놓고 밧줄로 한 번 더 묶인 입가는 자세히는 보이지 않지만 피가 묻어있는 듯 했고 온 몸 구석구석에 멍이 번져있었다. 제일 끔찍한 건 남자의 하체 부근에 피가 엉겨붙어 엉망이었다는 것. 저 미친 새끼는 이 꼴을 보고 저따위로 세운 거였어? 토악질이 밀려왔다. 쾌쾌한 정액 썩은 내가 방안에 가득차있었다. 남자가 몸을 비틀며 읍읍, 소리쳤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켓에서 나이프를 꺼내 남자의 몸을 묶어두었던 끈을 잘라내었다.




"가…감사…"




 거칠게 쉰 남자의 말이 끊겼다. 끊길 수 밖에 없었다. 남자의 끈을 다 잘라낸 후 그 나이프를 그대로 남자의 목에 겨눴으니. 남자의 눈이 희망으로 반짝이다 순식간에 좌절로 물들었다. 그러다 이내 체념한 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물로 차 반짝이던 눈동자가 이내 다 눈꺼풀 안으로 사라졌다. 그 일련의 과정을 다 지켜보다 칼을 목에서 떼어냈다. 남자의 눈썹이 움찔하더니 그 밤하늘같던 눈동자가 드러났다. 딱히 몸을 덮을만한 게 없어 내 자켓을 벗어 감싸려는데 남자가 내 손을 저지했다.




"저기… 담요있어요. 깨끗하지는 않지만, 그 쪽… 잠바 벗으면 춥잖아요."

"괜찮은데."

"구해주신 것도, 저 남자 죽여주신 것도, 다 감사해요. 그런데 저 때문에 감기라도 걸리면 제가 너무 죄송할 것 같아요."




 꽤 단호하게 말하는 남자에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구석에 아무렇게나 뭉쳐져있던 담요를 펼쳐 몸을 감쌌다. 남자가 담요를 손에 꼭 쥐고 몸을 잘게 떨었다. 추워서,는 아닌 것 같았다. 빤히 쳐다보자 남자가 몸을 일으키려 아등바등댔다. 다리를 안 쓰고 방에 갇혀있은지 꽤 됐는지 몸에 제대로 힘을 주지 못했다. 그대로 두면 일어서는데에 한 나절이 걸릴 것 같아 그대로 어깨에 들쳐맸다. 보기에도 말라보였는데 그보다 더 가벼웠다. 임무하면서 들어본 어떤 사람보다도 가벼웠다. 뭘 먹긴 한건지. 빠른 걸음으로 이 빌어먹을 방과 집과 골목을 빠져나왔다. 세워둔 차 조수석에 남자를 내려놓고 운전석에 앉았다.




"갈 곳, 가족 있어요?"




 남자가 말없이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하이고,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남자가 예민하게 몸을 움츠리더니 말했다.




"가족…없지만, 그냥… 아무데나 세워주시면…"

"아무데나 놓고가면 경찰에 내가 사람을 죽였다 신고하고?"

"아, 아니요! 제가 어떻게요. 그 쪽이 안 죽였으면 나중에라도 제가 죽였을거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저는 여기서 더 신세를 지면 안 될 것 같아서…"

"됐어요. 며칠만 내 집에서 신세져요. 그러고 버리고 가면 내내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아서 그런거니까. 그리고 말 그만해요. 목 다 상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말을 그만하라는 내 말에 남자가 입을 달짝이며 눈치를 보다 곧 고개만 끄덕였다. 새벽 시간이라 도로에 차가 별로 없었다. 신호대기 중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11자리 숫자를 누르고 잠시 있자 기다렸다는 듯 연결되었다.





"처리했습니다. 중랑구 **길 골목 왼쪽으로 네번째 집. 뒷처리는 알아서 하실 거라 믿습니다."





 뚝, 끊어버리고 차창밖으로 휴대폰을 버렸다. 알아서 하리라 믿는다 말했지만 어차피 뒷처리 허술하면 피보는 쪽은 저 쪽이니. 아마 벌써 지금쯤 그 집은 깨끗이 청소되었을거고 남자의 시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처리되었을 거다. 옆에 앉은 남자를 내려주고 이 남자가 경찰에 신고한다하더라도 내게 혹은 고용인에게 어떠한 해도 가해지지 않을 거라는 거다. 알지만…



 가만히 앉아있던 남자가 휙 고개를 돌려 내쪽을 쳐다봤다. 저를 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라 다시 앞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아, 모르겠네 진짜. 브레이크를 풀고 엑셀을 밟았다. 차가 거칠게 나아갔다.






_

남자 = 원우

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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